KINNEWS

나의 물놀이

apntv 2011. 5. 12. 03:27

애초에 나의 물놀이의 시작은 한여름 나이 7살때의  고향집 뒷쪽에 있는 섬진강 최상류중 하나인 장수에서 뻗어나온 지류인 요천이라는  냇가에서 삼촌을 따라서 아버지를 따라나선 것을 시작으로 기억 된다.

 그 냇가의 이름은 남원요천이다.  
 
그곳에서 여름이면 나는 친구들과 함께 또는 동생과  동네형 동생들과 함께 수영복이라는 호사스러운 아이템 하나 없이 (흰색) 그때는 아마 다 백양 이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멋진 브랜드가 된 BYC 말이다. 아마도 내 빤스는 백양이 아니었던

그 하얀 빤스를 입고 물놀이를 하다보면 어느새 팬티는 냇가의 이끼에 낀 돌에 걸려 넘어지고나 바닥에 앉은 임생물들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아주 누넣게 또는 초록 색으로 변하여  옷이 흠뻑 젖은 채로 집에 돌아와 바지를 벗으며 부모님께 야단을 맞으며 회초리질을 당했던 생각이 있다.

전형적인 시골촌놈의 모습이다. 어린시절 나에게 가장 경이로웠던 일은  삼촌이 요천에서 낚시하는 것과 또 하나는 아버지께서 강 바닥의 돌을 걷어내어 물고기를 잡는 것을 본 것이다. 가장 원초적으로 물고기를 잡았던 방법은 아마도 작은 바위를 던진것 같다.

물고기가 들어 있을만한 바위 또는 물고기가 도망간 자리를 잘 보고 숨어 잇을 만한 바위를 향해 그 바위보다 약간 작은 큰돌을 던져서 그 충격으로 놀라서 물고기가 허둥지둥 하ㅏ는 차에 바위를 걷어내고 물고기를 잡는 방법이다. 때로는 노련한 아버지나 삼촌께서 살짝 아주 천천히 손을 바위밑으로 집어 넣으며 물고기를 천천해 구석으로 몰아 손으로 잡는 것을 본 것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지금 생각해도 실로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알은 것이지만 그러한 것으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은 조금 감각 있는 그동네 태생이라면 누구나 다하던 방법이었던 것이다. 요즘의 아이들이 과연 그러한 것을 알까? 어느덧 나도 6살 먹은 아이를 둔 아빠가 되었지만 내 기억에 있는 그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 자연을 몸소 가리키는 삶 말이다.

어릴적 물놀이의 가장 큰 충격은 서울로 이사온지 얼마 안되어 이듬해 국민학교 1학년때 고향마을에 갔던 때이다. 지금은 잘 생각 나지도 않는 여름이나 겨울이나 방학때면 어김 없이 찾아가 만나던 "용이" 와 용이의 동생 그리고 "창식이" ...훗날 알은 사실이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나의 고향 친구들은 점점 나를 잊어갔다. 나 또한 고향의 친구들을 잊어 갔다.
한해 두해 고등학교때까지 무려 12년간을 여름 겨울 방학때면 꼭 방문하여 1주일 이상을 지냈고 했지만.... 여느 시골이 그렇듯... 동네엔 초등학교 때보 중학교가 없으니 초등 6학년이 끝나고 중학생이 되었을때 부터 고향의 친구들이 점점 멀어지고 잊혀진것 같다.

당시는 읍이었지만...이제는 시가된 남원으로 버스를 타고 20여분이상을 다녀야 했으니....게다가 14살 언저리 이지만...머리도 제법 굵어졌지 않은가? 어김 없이 시골에 가면 친구들은 서울에서 왓다며 좋아해 주었다. 다만 그 서울이라는 곳도 당시에는 신림동 -- 서울 처음 와보고 알았다. 서울이 이런곳이라는 것을 고작 신림동을 보고서... 초등 학교 때만해도 신림동을 벗어날 일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 한번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 멀리 나갔던 서울 대공원 정도 였는데 당시만해도. 서울대학교 언덕과 신림 사거니 심지어는 봉천동 까치고개가 다 비포장 이었다. 적어도 아시안 게임이 있기전까지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더라. 빈부의 차이는 그때부터 나기 시작 했다능.... 올림픽 공원이니 뭐니 하니 하는 아시안 게임을 하는 동네부터 외국인에게 전시행정으로 보여주고자 하여 먼저 개발을 해서 아파트를 세운 압구정이니 강남이니 잠실이니 하는.... 아시안 게임을 하고 나니 정말 신림동은 서울에서도 가장 초하위 촌구석이 되더라.

강북의 미아리나 망우리 및 뭐 수유 쪽은 신림동보다도 더 깡촌이었으니 말 다했다. 그런 환경에서 고향을 가면 일부 부를 축적한 사람들을 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향과 큰 차이가 나지 않으니  친구니 부모님이니 태어난 곳이니를 떠나서 나를 반겨주고 아껴주고 정신적 휴식처가 되는 추억의 고향에 가서 살고 싶은 마음이 안생겨 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다시...음...뭐 쓰기만하면 자꾸 삼천포로 가려해서 ㅡㅡ;

초등학교시절의 가장 충격적인 물놀이 사건은 바로 초등 4학년정도 겨울에 있었던 요천에서의 얼음배 사건이다. 대나무 대인데... 시골 친구들은 그것을 "간지대" 또는 "간질대" 라고 불렀다. 지금은 그렇게 춥게 강이 얼지 않지만 어린 시절은 정말 대단하게 추웠고 얼기도 참 두껍게 얼었다.

일단 큰 얼음 바닥을 찾아서 거기에 길고 폭이 좁은 돌로 찍어서  얼음에 구멍을 내고 길다란 대나무 대(약 2m~2.5m)를 강 바닥에 닿도록 꼽는다. 그리고 나서 사람이 두세명 타고 부력을 받을 만한 크기로 나머지 주위를 깨뜨려서 얼음 판을 띄우는 것이다. 지금이야  고향 마을 뒤의 요천 수위가 많은 곳은 1미터50정도 적은 곳은 대부분 60cm 미만 이었지만.... 어린시절만해도 가히 강이라 불리울만큼 물이 많았다.

그렇게 해서 만든 배를 노젖듯이 간지대를 젖다가 한 20여 미터나 내려왔을까?  난 겁이 많아서 타지 못했고 제법 당찬 세살 어린 동생이랑 동네 형들이랑 그것(얼음배)를 탔는데 그만 간지대를 꼽은 가운데부처 양쪽으로  얼음판이 쪼개져 버렸다. 얼음판은 갈라지고 그 얼음배에 탔던 세사람은 물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난 너무나도 가슴이 뛰고 겁이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위험한 일인데 그때는 일년에도 몇달씩 그 물에서 놀던 형들이 구사일생으로 기지를 발휘하여 아무도 다친사람 없이 동생도 구해내고 다 무사히 물에서 탈출을 하였다.

사실 그 시작은 얼음배를 타려 한것은 아니고 얼음에 구멍을 내고 낚시를 하려던 것이다. 그런것을 누군가 아이디어를 내서 그런 시도를 했던것이다. 얼마나 큰 사건이었던지 머리에 기억이 선명하다.

고향 물놀이중에 가장 과학적?이었던 물놀이 방법이 작살총이다.
재료는 대나무 약 50cm(앞뒤가 막힌것) 긴 쇠꼬챙이(약 80cm) 를 일단 ㄱ  자로 떡는다.  그리고 고무줄이 필요하다. 상상해보면 대충 어떤 방식인지 알것이다. 이런 물건으로 물고기를 잡는다. 요즘 같으면 정말 고기 많은 대해 또는 바다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일이지만 어린시절 고향 요천의 냇가에서는 열 너댓살 먹은 아이들도 이런것을 만들어 15~20cm 정도가 되는 메기나 쏘가리나 꺽지 또는 그밖의 다양한 민물어종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이것도 연습과 감각이 필요하다 위험하기도 하지만 도구만 있다고 잡을 수 잇는 것이 아니다. 햇볓에 반사되는 물빛과 그물 안을 돌아다니는 물고기 바늘의 반짝임을 놓치지 않을 경험이 필요하다.

이렇게 잡은 물고기를 작은 과도(무쇠칼-남원은 식도도 참으로 유명하다)를 이용해서 즉석에서 배를 가르고 내장을 빼고 강 둑에서 강돌로 화로를 만들고 여기저기 흩어져 잇는 나뭇 가지로 불을 지펴서 나무가지에 꿰어 고기를 구워먹으면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요 일품이다. 간이라는 것은 미리 준비해간 소금 조금이면 된다. 사실 아이들이니 저렇에 먹었고 고등학교 수준으로 올라간 어른? 이라면 아예 강둑으로 냄비나 김치나 양념을 챙겨가는 사람도 많았다.

요즘 내 고향에서 가장 유행하는 또는 실용적으로 즐기는 낚시는 바로 낚시가 아니라 바로 쵸크의 설치이다. 검색기에
물고기 쵸크 라고 검색하면 어떤 물건인지 나올것이다. 이 장비는 강둑이 낮거나 긴 곳에 설치하여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물건이다. 설치를 하고 서너 시간만 기다리면 예닐곱명이 먹을 수 있을 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사실 그리 바람직한 고기잡이 방법은 아니다. 뭐냐면 큰물기기든 작은 물고기든 거의 모든 물고기가 걸린다. 때문에 이 장비를 사용할때에는 치어는 빠져 나갈 수 있도록 그물이 덜 촘촘한 물건을 사용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쓸게 참 많은데 머리속에서 정리가 잘 안된다.  요즘에 나는 루어 낚시를 공부중이다. 가리켜주는 사람 없이 혼자서 배우고 있다. 서울이라는 곳에서 낚시를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곳은 단연 한강이다. 한강 공원 어느 지역이던지 낚시를 할 수 있는 구역이 정해져 있다. 한강은 고기의 어종도 다양하다.  쏘가리 붕어 장어 누치 강준치 그밖에 몇종더......루어를 홀로 나름 정보를 얻어가며 배우면서 어린시절의 낚시 생각이 나고 물놀이 생각이 나고 고향 마을의 요천이 생각난다. 굳이 낚시가 아니더라도 요천이 생각 낫을 것이다. 워낙에 물이 말고 깨끗한지라 살고 잇는 물고기도 고급어종들만 살았으니까 말이다....올해는 요천에 갈 기회가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가게 된다면 루어장비를 챙겨가야겠다. 씨알이 아주 악을 것 이지만 요천에서 낚시도 즐기고 어린시절도 회상하고 싶다.